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구성이 가장 탁월한 명품 비극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이태주 옮김)가 으로 출간되었다. 고결한 성품의 명망 높은 장군인 오셀로가 악인의 간계에 넘어가, 정숙하고 착한 아내를 향한 애정이 질투심와 의심으로 타락하는 과정을 다룬다. 사랑과 질투의 감정을 강렬하게 묘사하는 셰익스피어의 인간에 대한 조망을 엿볼 수 있다. 는 셰익스피어의 어느 작품보다도 비극적 구성이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셀로 장군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사실적이다. 그에게는 초자연적이며 신비로운 부분이 전혀 없다. 오셀로 장군이 또한 고결한 비극적 인물로 묘사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에서 특이한 존재는 이아고다. 그는 이기심과 악의의 상징이 되고 있다. 데스데모나는 오필리어나 코델리아처럼, 아름답고 가련한 비극적 여주인공이다. 작품 는 과 비교하여 그 주제가 덜 철학적이고 과 비교하여 덜 격정적이지만, 그 대신 사실적이요 낭만적인 작품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시(詩)의 매력 때문이다. 과 가 구별되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와는 달리 은 명백한 이중 플롯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리어 왕과 딸들의 관계가 메인 플롯이라고 한다면, 글로스터와 그의 아들들과의 관계는 서브 플롯이 된다. 이 두 가지 플롯이 평행하여 서로 얽히면서 주제가 대조적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이 강조된다. 은 나 가 지니고 있는 통일성과 집중성은 잃고 있지만 상징적 의미의 표현에는 성공하고 있다. 선이 싫고, 선을 증오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 이아고의 행위에는 복수라든지, 질투라든지, 혹은 야망 같은 것이 있어 행동상의 동기가 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악의라든지 자신의 악으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덕에 대한 생리적인 혐오와 타자에 대한 경멸감, 선에 대한 의식적인 반항, 악한 행동 자체에 대한 향락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아고의 악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오셀로는 전적으로 이아고의 손아귀에서 희롱당하기만 한다. 이아고의 악이 오셀로를 각성시켜 그를 향상시키는 채찍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군이 되어 그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오셀로는 햄릿, 리어 왕, 맥베스 등의 경우와 같이 극한 상황에 도달한 인간의 비극이다. 그는 어두운 인간 고뇌의 심해에 도달한다. 빅토르 위고는 “오셀로는 무엇이냐. 그는 밤이다. 거대한 운명적 인간이다”라고 말했고,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아고가 오셀로 곁에 있는 것은 오셀로가 무너져내리는 산벼랑에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두 비극적 인물들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를 읽고 선(善)이 산벼랑 아래로 무너져내리는 비통감을 맛본다. 이 비통감은 정의가 끝내 실현되지 못한 깜깜한 밤과도 같은 것이다. 이아고를 마지막에 사로잡아 아무리 그를 고문해도 데스데모나는 돌아오지 않는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夜)』, 『자(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