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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엽서
손장원 저 글누림출판사
분야
아카데미 > 인문계열
봉투 없이 글을 써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안된 네모 모양의 굵은 종잇조각. 우리가 ‘엽서’라 부르는 이 문물이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 유럽에서였다. 단순히 우편물 구실을 하기 위해 탄생한 이 엽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업적을 남긴다. 그건 바로 ‘근대문화’의 시작점이 된 것. 귀족계급이나 지배계층의 전유물이던 ‘예술’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고 교감하는 ‘문화’로 이행하던 시작점, 근대문화의 서막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엽서였다.
우리나라에 엽서가 등장한 건 1900년 무렵이었다. 샤를 알레베크(Charles Aleveque). 한국 이름 안례백(晏禮百).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프랑스인이다. 1897년 10월 무역업자로 한반도에 발을 디딘 그는, 대한제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 정부가 무기를 구매할 때도 관여했고, 프랑스와 차관을 협상할 때는 대한제국 정부 측 대리인으로 임명돼 프랑스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또, 한성 외국어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를 맡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불한사전인 『법한자전(法韓字典)』을 편찬한 이도 그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엽서 역시 알레베크,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엑스포에 그는 대한제국 정부 대리인으로 참가한다. 이때 우리 궁궐과 풍속을 촬영한 사진을 가져가 엽서로 제작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엽서 ‘알레베크 그림엽서’다. 총 48장으로 구성된 이 엽서는 프랑스 현지에서 초콜릿이나 비누, 화장품 등을 팔 때 끼워주거나 파리 엑스포에서 한국관의 기념품으로도 판매됐다.
그는 물론 엽서를 제작하기에 앞서 대한제국 정부의 허락을 구했다. 그런 면에서 ‘알레베크 그림엽서’는 관제엽서였다고 할 수 있다. 엽서의 왼쪽 위편에는 ‘S?oul(Cor?e)’라는 프랑스어가 새겨져 있고, 사진 아래쪽에는 엽서번호와 사진 설명이 있다. 사진 오른편에는 ‘알네????? 법국 교사 셔울 ??한’이라고 수기로 쓰인 한글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우리에겐 익숙한 듯 낯설다.
알레베크의 그림엽서 48장 가운데 딱 한 장, 당시 인천의 모습을 담은 엽서가 있다. 프랑스어로 ‘9.- Cor?ens allant puiser de l’ean.(Vue prise ? Chemulpo. - 물을 긷는 한국인 (제물포 모습)’라고 인쇄된 이 한 장의 엽서가, 현재까지 전해오는 인천을 담은 그림엽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프랑스어로 표기된 ‘Chemulpo’라는 활자가 사진 속 장소가 인천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가로 14㎝, 세로 9㎝ 크기의 때 묻고 헤진 종잇조각. 그저 폐지 조각 같던 네모에는 100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삶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림엽서에 담긴 도상과 문자의 기록을 맞추니 이 건물에는 누가 살았고, 거기에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무심코 걷던 거리에는 어떤 이의 희열과 눈물이 배여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림엽서 속 이미지와 유사한 자료에서 잘려나간 장면을 찾아 씨줄과 날줄을 엮고, 지도, 문헌, 신문기사를 검색해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갔다. 사진 속 공간과 현재의 공간을 일치시키기 위해 답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림엽서 속 장소가 특정되지 않으면 사진을 크게 출력해 거리를 걸으며 퍼즐을 맞췄다.
우리의 근대는 낭만이 넘치던 모던이 아니다. 예쁘장한 장식이 달린 근대는 더욱 아니다. 실체로서의 근대에 다가가고 싶었다. 엽서에 등장하는 건물에 살았거나 회사를 운영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려했다. 한 때 인천의 주류였던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관의 나이에 미지의 땅에 정착한 일본인은 일제의 전령사로 우리를 착취했던 사람인 동시에 근대문물의 전달자였다. 어떤 이는 수레에서 떨어지는 나락을 줍던 가난한 여인을 고발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목욕탕이 부족한 조선인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기도 했다.
그림엽서는 우리를 근대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다. 그림엽서에 담긴 사진도 연출한 장면이 존재하고,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사실이 바뀌기도 하지만, 문자보다는 객관성이 높다. 사진에는 촬영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정보도 포함되어 있어 근대의 모습을 보다 사실에 가깝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림엽서만큼 생생하고 다양하게 근대를 기록한 자료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림엽서를 해석하는 작업은 특정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필자는 건축지식을 바탕으로 도시의 공간적 특성과 건축적 의미를 읽고 해석했을 뿐이다. 그림엽서를 이용해 근대의 모습을 추출해내는 작업은 학제간 협업이 절대적이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길 소망한다. 그간 터득한 엽서를 읽는 방법과 구체적 사례를 이 책에 기록했다. 이 책이 근대도시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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