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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야기
허진석 저 글누림출판사
분야
아카데미 > 인문계열
「여자이야기」는 주제나 목적에 집착한 책이 아니다. 그냥 ‘여자이야기’다. 다만 길고 유장한 이야기, 호메로스가 에게 해의 잔잔한 파도 위에 부스러지는 달빛을 배경으로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마지막 상봉을 노래하던 때의, 그의 시간 어느 마디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테면 라르고 조(調)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밖에 없을 보이저의 여행과도 같은 역사와 상상과 성찰의 구간을 유영하고 싶었다. 밤바다 위에 떠오른 향유고래가 길게 내뿜는 날숨. 청중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메데이아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안티고네 같은 이름은 그리스 고전과 신화의 세계에 박제된 석고 덩어리가 아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생명을 내재하고 우리 의식 속에서 약동하는 강력한 현실이다. 당신이 금요일 밤 폭음한 대가를 치르는 어중간한 토요일 오전에 차가운 생수를 꺼내며 냉장고의 문을 던지듯이 닫는 순간, 저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도 뚜껑을 굳게 닫아버렸을지 모른다. 박제된 이데아의 세계는 그런 곳이다. 당신이 보지 못한 냉장고 속의 그 무엇을 난들 어떻게 알겠는가만.
서동욱은 질 들뢰즈를 논한 글에서 “번개는 어떻게 생기는가? 바로 빛과 어둠 사이의 ‘차이’에서 생긴다.”고 전제한 다음 이렇게 풀어간다. “차이의 세계에서는 차이 나는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계속 그 자체로 반복되면서 사물들을 생산한다. 차이는 반복에 거주한다. 반복은 무엇보다도 시간적 개념, 즉 ‘되풀이 되는 시간’이며, 주어진 상태들의 긍정을 조건으로 한다. …중략… 과거 시간에 뒤늦게(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것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반복인 것이다.”
확신하건대 우리는 재현을 살고 있다.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이 시간은 만년의 호메로스가 가래 낀 기관지를 식식거리며 읊어나가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상봉, 절망적인 작별의 예고 앞에서 전율하던 그 저녁 날의 반복이자 새 버전이다. 이 반복은 주체이자 객체이며 사실은 우리 자신이다. 안티고네라는 이름의 아곤은 21세기 지구별의 일이다. 되풀이이기 이전에 참혹한 현실로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난 산 채로 무덤에 들어가지만 당신은 죽은 채로 이 땅에 살겠죠.” 안티고네, 그녀의 선고.
「여자이야기」에는 상징이나 암시가 없다. 생각과 이야기의 틀을 그대로 가져다가 눌러 찍었다. 나는 장님도 이야기꾼도 아니며 뚜쟁이는 더더욱 아니다. 당신 앞에 무언가 내놓고 흔들지 않는다. 컵 속의 주사위를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다. 주사위는 당신이 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당신의 두개골이 거대한 컵이 되어 주사위를 이리저리 옮겨 담고 있을 뿐이다. 불행하게도 대개는 잔혹한 결론에 도달하여 분노하거나 비통해 할 따름이다. 저자는 당신과 나란히 앉아 자기 몫의 좌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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